프린터는 여러모로 업무에서 상징적인 기계라고 본다.
결과물을 출력한다는 것은 더이상 당장 수정할 것이 없다는걸 의미한다.
그게 완성되었다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작업의 1차적인 완결. 한 단계의 종료를 의미한다.
프린트를 한다는 것은 작업의 완료를 기념하는 일종의 마일스톤이자 축제인 것이다.
그럴때 출력되는 종이를 보고 있으면 화면으로는 느낄 수 없는 뿌듯한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출력된 자료는 영구적으로 남는다.
이 역시 시각적인 형태로 내가 투입했던 작업시간을 보존하고 나중에 음미할 수 있는 재료가 된다. 내용이 중요한게 아니다. 그 부피가, 분량이 내가 일한 시간을 직접 말해주는 것이다.
데스크에 앉아 일하는 직업은 출력을 위해서 자료를 만드는 과정이 일 그 자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만약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그래서 보고서나 기획서를 쓰고 있다면 프린터가 내 삶의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개발자라고 해서 그런 문서 안쓰는 것도 아니지만... 프린터가 삶의 친구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주는 아니었지.
허면 개발자도 프린터를 일의 친구로 삼을 수는 없을까?
개발 도중에 어떤 자료를 만들어서 프린터로 출력하는걸 개발의 필수과정으로 삼고, 그 자료를 만들고 출력하는데 들어간 노력 이상의 효과를 얻어낼 수는 없을까? 출력된 자료를 개발에 들어간 노력의 흔적이자 트로피로 삼을 방법은 없을까?
그런게 가능하다면 업무에 집중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전에 근무일지를 매일 출력해서 보관하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근무일지도 출력된걸 모아서 보면 임팩트가 상당하거든... 일부러 찍어서 본 적은 없지만 파일 형태로 된걸 나중에 감상한 적은 있는데 내가 놀지 않았구나 하는 보람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근무일지를 매일 출력해서 보관하려고 했는데... 그게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