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일단 내 경험에 기반한 이 글은 어쩌면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글일지도 모르겠다. 워드 프로세서라는 디지털 신문물이 보급된지 어언 수십년이 지나 더이상 구시대적인 글쓰기 방법은 독서교실에 가서 따로 돈주고 배워야 할 정도가 되었으니까.
아날로그 시절, 글쓰기를 하는 방법은 펜으로 글자를 직접 쓰는 것뿐이었다. 당시로서야 그게 당연한 것이었지만 편리해진 지금의 디지털적인 방법과 비교해보면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퇴고의 유연성이다. (원고지에 글쓰기를 학교에서 배워보신 분이라면 기억할거다. 원고지에 쓰는 몇가지 교정부호들을... 생각해보면 그게 할 수 있는 퇴고의 전부인거다. 그걸로 안되면 다시 쓰는수밖에.)
펜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한번 써내면 수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고작해야 표현 일부를 바꾸거나 하는 정도일뿐 아예 새로운 문장을 중간에 끼워넣는다던가 문장의 순서를 바꾼다던가 한 문장을 완전히 다시 쓴다던가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나마 삭제는 아날로그라도 언제나 쉽다. 두줄 슥슥 그으면 끝이니까.)
그래서 펜으로 글을 쓸 때는 항상 전체적인 구조를 머리에 염두에 두고서 어떻게 글을 써나가야 할지 항상 고민해야만 했다. 논지의 전개 방향, 다음 문장과의 연계, 최종적인 결론의 모습, 전체 지면의 한계 등을 복잡하게 고려하는 작업이 아날로그적인 글쓰기이다.
글을 쓰면서 이러한 요소들을 동시에 고려하는건 너무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터넷 댓글 쓰듯이 생각나는대로 죽죽 써나가면 만족할만한 글이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펜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자체로 꽤 힘든 일이다. A4 용지로 딱 1장만 꽉 차게 글자를 써도 손아귀가 뻐근해지는게 사람이다. 피곤하면 글씨체가 뭉개지고 예쁘지 않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손으로 글자를 써내려가는 속도는 머리로 생각하는 속도에 절대로 미치지 못한다. 마음만 앞서면 글자체는 또 뭉개진다.
글을 예쁘게 쓰는데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글자체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한터라.. 예쁜 글자체를 유지하면서 글을 꾸준히 써내려가려면 상당한 수양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중학생 시절 배웠던 타자기를 정말 좋아했다. 그저 손가락을 두드리는 것만으로 예쁜 인쇄체의 글자가 새겨진다는게 너무 편리했다. 펜으로 글을 쓰는 것보다 더 빠른 입력속도도 좋았다. 손으로 글을 쓰면 솔직히 생각할 시간이 너무 모자란다. 타자기를 쓰면서부터 처음으로 글을 쓰는데 여유있게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PC통신 시절 초창기에 글을 입력하는 기본 방법은 라인 에디터였다.
라인 에디터라는 것은 글을 한줄씩 한줄씩 써서 입력한다는 뜻이다. 수정이나 편집도 마찬가지이다. 한줄씩만 할 수 있다. 이건 아주 초창기의 워드 프로세서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다.
이게 굉장히 불편했기 때문에 ................